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마즈 타카코 (문단 편집) == 결혼 == [[1960년]] 초, [[일본 황실]]에는 겹경사가 일어났다. [[2월 23일]]에 장손 [[나루히토]]가 태어나더니, 그 여운이 채 가기도 전인 [[3월 10일]]에는 타카코 공주가 시집을 가게 된 것이었다. 신랑은 5살 연상의 시마즈 히사나가(島津久永)로, 타카코 공주는 결혼 후 황적에서 이탈하고 평민 신분이 되었다. 히사나가는 당시 일본수출입은행 직원이었으며, 타카코 공주의 큰오빠 [[아키히토]] 황태자의 [[가쿠슈인]] 동창이자 어머니 [[고준 황후]]의 외사촌 동생이다.[* 큰언니 [[히가시쿠니 시게코]]처럼, 친족인 5촌 당숙과 결혼하였다.] 가쿠슈인 출신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단순한 직원이 아니라 재계의 거물급 집안의 재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. [[파일:attachment/시마즈 타카코/suga2.jpg]] [[약혼]] 발표 기자회견 당시 타카코 공주가 보여주었던 밝은 모습은, 새로운 시대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. 또한 '''"제가 고른 신랑을 좀 보세요!!(私の選んだ人を見て下さって)'''"라는 타카코 공주의 발언도 화제가 되었다. 물론 타카코 공주와 히사나가가 이 말 그대로 연애결혼한 것은 아니었고, [[일본 황실]]과 [[궁내청]]에서 정한 혼사였다. 하지만 점점 중매결혼에서 연애결혼으로 풍속이 바뀌어 가고 있던 당시 [[일본]]의 풍속을 반영한 발언. 이 발언은 당시 [[유행어]]가 되었으며, 또한 이 발언을 계기로 연애결혼이 늘었다고도 한다. [[결혼]] 직후, [[도쿄도]] [[세타가야구]]에 마련된 신혼집 근처에는 한동안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. 1963년 [[10월 26일]]에는 시마즈 타카코를 유괴하여 몸값 5천만 엔을 요구하려던 남자가 체포되는 [[납치]] 미수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. 범인은 같은 해 [[11월 21일]] 체포되었다. 셋째 언니 [[다카쓰카사 가즈코]] 또한 강도를 당한 적이 있었다. 카즈코와 타카코의 사고로 인해, 이후로는 시집가서 평민이 된 [[공주]]들도 경찰의 경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